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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는 기존 자본주의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경제학자다. 케인스는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 가격이 자동으로 수급이 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대공황은 케인즈가 제시한 적절한 예시에 해당한다. 그는 대공황의 요인을 임금이나 물가 등 명목 변수의 경직성 그리고 시장에 부정적인 전망이 만연해 급속도로 금융이 냉각되는 현상 등을 꼽았다. 케인스는 이에 대한 처방으로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 주장은 세이의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케인스의 주장은 정확히 성립했다. 그 전까지 세계 경제학의 기본 원리였던 세이의 법칙은 문제가 많이 제기된 이론이었다. 오히려 당시 경제학자들은 단기적으로는 수급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장기적으로 저절로 업어질 것으로 보았다. 노동 부족과 실업, 호경기와 불경기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런 주장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케인스는 그 장기적 계획은 현재 사안에 대해 잘못 알려주고 있다. 장기적으로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모두 같은 결론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기 경기 변동을 인정하든 세이의 법칙에 의하든 상관없이 모두 외부에서 개입하지 말고 경제가 스스로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처방이었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의 장기간은 사람의 일생보다 훨씬 길다. 당장 공황이 닥친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개입은 수요를 더욱 창출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빈 병을 땅에 묻고 정부가 사람을 고용해 빈병을 파내라는 설명은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물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라고도 설명했었다. 그전까지 경제학계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케인스의 이론은 시대적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은 불황에 정부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1920년대 경제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금기시 했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니 힘들더라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업자 수가 증가하고 공산주의가 득세하며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받던 시대에 이러한 주장은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 케인스의 등장은 인간이 그저 수동적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라 스스로 시장에 나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희망과 같았다. 여담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케인스의 이론이 합당성을 갖고 있음을 증명했다. 케인스는 그 세계 경제학계에서 많은 인정을 받게 된다. 케인즈학은 세계 경제 정책의 기본 지침이 된다. 케인스의 저서는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그가 확고한 경제적 신념이 있던 학자보다는 기존 체제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는 엘리트로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를 전개하는 지배층의 대변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당시 경제학계는 케인스의 생각을 이단적인 생각으로 치부했었다. 케인스를 비판한 사람들은 통화론자나 새고전학파 등이 있었다. 새고전학파는 시카고 중심에서 케인스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거시 경제학파다. 케인스의 후학들은 분파가 여러 개로 갈렸다. 첫 번째는 포스트 케인지언이다. 케인스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후학들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두 번째는 네오케인지언이다. 케인즈보다는 조금 뒤에 활동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케인즈 경제학과 종래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종합한 당시의 주류 경제학파였다. 세 번째는 세케인스 학파다. 네오케인지언이 경제학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세대 교체된 집단이다. 경제학계에서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1970년대 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의 이론의 허점을 조금씩 찾아내려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새고전주의 및 통화주의였다. 이때부터 정부는 시장에 개입은 하지만 간섭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절충적 흐름이 만들어졌다. 정부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져도 능률과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의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보다는 미국의 무역 적자에 대한 불안감이 드러난 결과이다. 당시 달러 보유국들이 달러를 다른 통화로 교환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했고 석유 가치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돈을 투입한 미국 정부의 선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부의 개입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케인스의 이론에 따라 정부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개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거시경제학이 1930년대에 탕생하고 케인스 경제학은 일시적으로 뜸해지는 현상을 겪지만 90년대 이후 신학파가 나타나고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케인스는 계속해서 재평가받고 있다. 물론 케인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일어나고 있고 정반합이 꾸준히 이루어져서 이제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명칭만 다른 논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통화주의와 전기 새고전주의와 케인스 경제학은 장기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소용없다는 견해를 공유한다. 하지만 단기와 장기를 정의하는 기간이나 정책 등의 기술적, 세부적 관점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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